보험사는 데이터가 많은 회사입니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계약 정보, 보험료 납입 기록, 보험금 청구 서류가 모두 데이터입니다. 그래서 보험 AI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많은 사람이 데이터는 충분하니 모델만 잘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프로젝트를 해 보면 가장 오래 걸리고 가장 많이 막히는 곳이 바로 데이터입니다.
이 글에서는 보험 데이터가 다른 산업의 데이터와 어떻게 다른지, 그 특징 때문에 AI 학습이 왜 어려운지 다섯 가지로 나누어 정리하겠습니다. 그리고 실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는지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 결과가 나오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AI는 문제와 정답을 함께 학습합니다. 예를 들어 사기 탐지 모델은 과거 청구 데이터와 그 청구가 실제로 사기였는지라는 정답을 함께 보고 배웁니다. 그런데 보험은 정답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산업입니다.
종신보험이나 연금보험은 계약 기간이 수십 년입니다. 오늘 가입한 고객이 앞으로 보험금을 얼마나 받게 될지는 먼 훗날에야 확정됩니다. 그 사이에 의료 기술, 생활 습관, 상품 구조가 모두 바뀝니다. 그래서 과거 데이터로 학습한 모델이 지금 가입하는 고객에게도 그대로 맞는지 늘 의문이 남습니다. 결과를 확인하는 데 오래 걸리니 모델을 고치는 속도도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이유: 중요한 사건일수록 드물다
보험이 대비하는 사고는 대부분 드물게 일어납니다. 큰 질병, 사망, 대형 사고, 보험사기는 전체 계약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주 작습니다. AI 입장에서 보면 맞혀야 할 사례는 적고 맞히지 않아도 되는 사례는 압도적으로 많은 셈입니다.
이런 데이터를 그냥 학습시키면 AI는 모든 건을 정상이라고 답하는 쪽으로 기울기 쉽습니다. 겉으로는 정확도가 높아 보이지만 정작 찾아야 할 사고나 사기는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보험 AI에서는 정확도 하나만 보지 않고, 찾아야 할 건을 얼마나 찾았는지와 잘못 의심한 건이 얼마나 되는지를 함께 따져야 합니다.
세 번째 이유: 중요한 정보가 서류 속에 갇혀 있다
보험사 데이터 중 표로 깔끔하게 정리된 것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진단서, 소견서, 영수증, 사고 사진, 상담 녹취, 심사자 메모처럼 정해진 틀이 없는 비정형 데이터가 많습니다. 그리고 심사와 보상에 정말 중요한 정보는 대부분 이런 서류 안에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서류를 사람이 읽고 필요한 값만 시스템에 입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버려졌고, 입력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같은 내용도 다르게 기록되었습니다. 최근 문서 인식 기술과 생성형 AI가 발전하면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그동안 쌓인 과거 데이터를 다시 정리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네 번째 이유: 데이터가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다
보험사는 오래된 회사가 많고, 업무마다 별도의 시스템을 운영해 온 경우가 많습니다. 계약 시스템, 보상 시스템, 고객 상담 시스템, 회계 시스템이 따로 있고, 상품이 바뀔 때마다 시스템이 덧붙여지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같은 고객이 시스템마다 다른 번호로 저장되어 있거나, 같은 항목의 정의가 시스템마다 다른 일이 생깁니다.
AI 모델을 만들려면 이 데이터를 하나로 연결해야 합니다. 가입 당시 정보와 이후의 청구 기록, 상담 이력을 한 고객 단위로 묶어야 의미 있는 학습이 가능합니다. 실제 보험 AI 프로젝트에서는 모델을 만드는 시간보다 데이터를 찾고 연결하고 정의를 맞추는 시간이 훨씬 더 길게 걸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다섯 번째 이유: 민감한 정보라 마음대로 쓸 수 없다
보험 데이터에는 건강 정보, 금융 정보, 사고 정보처럼 매우 민감한 개인정보가 많이 들어 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와 신용정보 관련 법령에 따라 수집한 목적 밖으로 쓰거나 다른 데이터와 결합하는 데에는 엄격한 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AI 학습에 데이터를 쓰려면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가명 처리를 하거나, 고객의 동의를 받거나, 정해진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외부 AI 서비스를 쓸 때는 데이터가 회사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는 장치도 필요합니다. 보험 AI는 기술보다 데이터를 다루는 절차와 통제가 먼저 갖춰져야 하는 분야입니다.
보험 데이터 문제, 실무에서는 어떻게 풀어 가는가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보험 AI를 미룰 필요는 없습니다. 실무에서는 몇 가지 원칙으로 이 문제를 풀어 갑니다.
먼저 결과가 빨리 나오는 문제부터 시작합니다. 수십 년 뒤의 사망률을 맞히는 문제보다 이번 달 청구 서류를 자동으로 읽는 문제, 다음 달 해지 가능성을 예측하는 문제가 훨씬 빨리 검증됩니다. 성과를 빨리 확인할 수 있는 영역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모델보다 데이터 정의를 먼저 맞춥니다. 고객, 계약, 사고, 청구 같은 핵심 항목의 정의를 회사 전체에서 하나로 정하고, 그 기준으로 데이터를 연결하는 작업이 모든 보험 AI의 기초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사용 원칙을 문서로 만들어 둡니다. 어떤 데이터를 어떤 목적으로 쓸 수 있는지, 가명 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외부 AI에는 무엇을 보내면 안 되는지를 정해 두면 현업과 IT, 준법 부서가 같은 기준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마치며
보험 데이터는 양이 많지만 AI가 바로 배우기에는 까다로운 데이터입니다. 결과가 늦게 나오고, 중요한 사건은 드물고, 핵심 정보는 서류 속에 있고, 시스템은 흩어져 있고, 대부분 민감한 정보입니다. 이 특징을 이해하고 시작하면 보험 AI 프로젝트에서 흔히 겪는 시행착오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보험 AI가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영역인 언더라이팅을 다룹니다. 먼저 AI 언더라이팅이 무엇이고 전통적인 심사와 무엇이 다른지 정리하겠습니다.